영화 <올빼미>의 줄거리
경수는 앞을 보지 못했으나, 뛰어난 침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일한 혈육인 동생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선 경수의 입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경수의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침술을 인정받아 궁에서 어의를 돕다가 어의가 소현세자를 독침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그의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사실 경수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불 꺼진 암흑 속에서는 볼 수 있었습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소현세자는 그를 몰아붙이거나 내치는 대신 비밀을 지켜주고,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그 속에서 두 사람 간의 관계가 맺어집니다.
그로 인해 소현세자의 독살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경수는 목격한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영의정 최 대감의 도움으로 경수로 인해 왕의 범죄가 밝혀집니다. 결국 경수의 목숨을 건 용기가 진실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건 바로 어의에게 어명을 내린 인조였기에, 결론은 예상과 달리 흘러갑니다.
아는 역사와 상상력의 조화
영화 <올빼미>는 인조와 그의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수월하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지식과 맞물려 더 타당성의 무게를 더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약 역사 속에서 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침술사로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객에게 개연성을 가지고 이야기에 수긍할 수 있는 상황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경수가 오히려 어둠 속에서 눈앞을 볼 수 있다는 신선한 설정은 악인들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경수를 위협할 때 위기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하거나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해를 빠르게 하고, 몰입도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는 좋은 작용을 해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흥미진진한 요소는 다소 부족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는데,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것만 같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그 무언가가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배우 유해진의 연기는 늘 좋아하지만, 유독 이 영화에서는 인조역에 잘 어울리지 않은 느낌 또한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기존에 그가 맡아왔던 캐릭터들의 잔상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왠지 그보다는 더 뼛속까지 잔인하고 못난 캐릭터를 연기할, 보다 궁합이 잘 맞는 배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현실과 판타지가 어우러진 결말
경수는 뛰어난 침술을 가졌음에도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당하는, 어쩌면 사회의 가장 약자 중의 약자였습니다. 그랬기에 소현세자의 독살을 목격하고도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용기를 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때론 눈 감고 사는 것이 몸에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한없이 약한 이가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봤자, 해를 입는 것이 정해진 결말이라는 걸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시절에는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그때만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사회적 약자인 경수가 진실을 알고도 입도 벙긋하지 못하다가 세상을 향해 진실을 알리는 용기를 가지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따라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수는 진실을 밝히고 어린 원손을 구해내고자 합니다. 이런 경수의 용기에 힘이 되어준 영의정은 마지막 순간, 왕을 처단하는 대신 왕과의 협상을 택합니다. 영의정이 원하는 후계자를 왕이 지목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경수의 용기는 정치에 이용되는 것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듯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인가 하는 씁쓸함을 남긴 채 말입니다.
경수에겐 사형이 내려지지만 죄가 없는 그는 비밀리에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4년 후, 병든 인조를 치료하기 위해 유명하다는 침술사를 궁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렇게 경수는 다시 인조와 마주합니다. 경수의 손끝에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야말로 영화적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